불신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진짜 무서운 미스터리는
숨겨진 살인자가 아니라,
가장 믿고 있던 존재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나인 퍼즐>과 <마더>는
외형적으로는 스릴러와 휴먼 드라마지만,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에 대한 의심과 감정의 균열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공포는 종종 감정에서 시작됩니다.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파열음.
이 두 드라마는 바로 그 ‘불신의 시작점’을 서늘하게 묘사합니다.

1. 나인 퍼즐 – 나는 내가 무섭다

<나인 퍼즐>은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미스터리 드라마입니다.
10년 전 연쇄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용의자였던 이레(김다미 분)는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갑니다.
당시 그녀는 살인 현장에서 깨어났고, 피해자의 피로 범벅된 상태였죠.

현재, 프로파일러가 된 이레는
자신이 연루되었던 방식과 동일한 사건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새로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한세운(손석구 분)은
과거 이레 사건에 강한 의문을 품고 그녀를 추적합니다.

이 작품이 무서운 건
이레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내가 범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감정적으로 떠안은 채 살아갑니다.

무죄일 수도, 유죄일 수도 있는 그녀는
누구도 온전히 믿을 수 없고,
기억조차 불완전한 자아와 매일 대면합니다.

이레는 외롭고, 무기력하며, 조용히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폭발하지 않고,
차가운 표정 뒤에 가라앉은 불신으로 조용히 번져나갑니다.

<마더>는 2018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일본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초등학교 교사 수진(이보영 분)은
학생 혜나(허율 분)가 엄마 자영(고성희 분)에게 학대당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도 혜나를 진심으로 도우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수진은 그녀를 ‘구조’하는 방식이 아닌,
유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데려와
가짜 신분으로 도망치며 ‘진짜 엄마’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이 드라마의 공포는
가해자가 사회적 타인이나 낯선 이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존재 – 생물학적 엄마 – 라는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자영은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랑도, 책임도 없이 아이를 소유물로 다룹니다.
그 앞에서 “엄마를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혜나는
자기 생존을 위해 거짓 감정을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감정은 공포 영화보다 더 현실적입니다.
관계라는 이름에 가려진 폭력,
호칭 하나로 모든 진심이 정당화되는 세계.

<마더>는 그 관계를 찢어내며 묻습니다.
“정말, 엄마이기만 하면 괜찮은 건가요?”

<나인 퍼즐>과 <마더>는
모두 ‘사실’보다 ‘감정’을 먼저 흔듭니다.

이 두 드라마의 공포는
사건의 반전이 아니라,
신뢰의 균열이 가져오는 감정의 붕괴에서 옵니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던 감정,
의무처럼 받아들였던 관계들이
사실은 아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두 작품은 너무도 조용하게, 차갑게 보여줍니다.

<나인 퍼즐>과 <마더>는
폭력이나 공포로 관객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장 친밀한 관계가 무너질 때 일어나는 감정의 파장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기억을 신뢰하고, 감정을 신뢰하고, 이름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누구를 의심해야 할까요?

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
아니면, 바로 당신 자신?